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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기록/2020 자발적 감금 생활

FAKE 우울, 항상 느끼는 외로움, 열등감

by 안나오 ANNAO 2020. 6. 30.

나에게는 우울증인지, 아니면 우울증인 척하는 것인지 모를 시기가 자주 찾아온다. 우울증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로 보면 우울증은 아닌 것 같다. 고3 때는 조울증까지 의심했었는데, 그건 그냥 수면부족 때문에 그랬던 것 같고, 어떤 증상이라기 보단 감정 주기가 맛이 나간 상태였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텀이 긴 듯 하니, 확실히 아닐 듯하다. (이젠 감정까지 쉽게 질리는 걸까. 나의 변덕이란 정말 놀랍고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수능 끝나면 친구랑 손잡고 정신 병원 가서 정신 상태 한 번 점검해보자 그랬었는데. 00아, 잘 지내니? 우리 가격 너무 비싸보여서 포기했었잖아.... 네 정신, 건강하지?

 

무엇보다 우울증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나는 그..... 우울함(인 척하는 상태)를 즐기기 때문이다.

 

마치...... 비련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취향인 거 같다. 나는 신나는 노래보다는 슬픈 노래를, 해피 엔딩 보다는 새드 엔딩을, 꿈과 동화 같은 스토리보다 적당히 어둡고 불행한 이야기를 즐긴다.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은 취향인데, 슬픔으로 고통받는 걸 즐기는 걸까? 가슴 아픈 스토리에 엉엉 울면서 "작가님 얘네 제발 행복하게 해주세요ㅠㅠ" 하면서 즐거워 하는 나...... 정작 작가님이 '얘네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노잼이라며 슬퍼하는 나....... 그런데 또 제대로 된 피폐물은 안 보는 편이다.

 

또  가끔은 진짜로 우울할 때도 있다.

 

이 때는 즐기고 뭐고 할 기력도 없다. 세상 만사 귀찮고, 귀찮은 내가 싫고, 할 일은 많고, 안 하는 내가 싫고...... 사라지고 싶고, 죽고 싶고, 세상이 없어져 버렸음 좋겠고, 시간을 멈추고 싶고, 생각을 멈추고 싶고, 짜증나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처음으로 돌아가 태어나지 않았길 빌었다.

 

절망이 내 안에 가득 찬 느낌? 이었던 것 같다.

 

다행이 이건 자주 오는 것 같지는 않고 보통을 그냥 즐길만한 우울한, 어쩌면 자학적인 기분.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후회, 열등감에 허덕이는 게 대부분인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더 가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딱히 그 기분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도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다행이 기분이 조금 좋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낭비하기도 싫어서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다. 아닌가. 조금 슬픈 거 같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가짜 우울은 열등감에 가까운 것 같다. 뭔가 열심히 하고 있을 땐 덜한 걸 보면 게으름의 후유증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가장 많이 하는 건 현실 도피. 특히 소설이나 웹툰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현실 도피와 회피는 다시 업보가 되어 돌아와서 다시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은 쌓이고, 그 책임감의 무게만큼 죄책감과 열등감이 나를 짓누르고. 그런 악순환.

 

사람이란 게 참 이상한 거 같다. 그냥 나만 이상한 거 같기도 하다. 그냥 나는 참 이상한 거 같다. 내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참 이상하다.

 

그래서 자꾸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 같다. 세상의 이상함과 다른 것에 신경 쓰기에는, 나 스스로가 내 안에 정립되어 있지를 않아서 나는 나 외에는 딱히 크고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 현실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핑계 같다. 핑계가 맞을 거다.

 

그냥 난 어렸을 때부터 나 외에는 딱히 큰 관심이 없었다. 나의 세계에는 내가 있었고, 그냥 내가 있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도 몇 가지 가지고 있는데, 그 기억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길을 잃어버렸던 것, 혼자 인형놀이 비슷한 걸 하면서 놀던 것, 혼자 울던 기억, 놀이터에서 넘어진 기억, 안 친한 아이와 놀이터에서 같이 그네를 타던 기억도 있긴 하네. 유치원 생일 잔치에 항상 엄마가 준 선물을 안 친한 애들 모두에게 주었었는데 내 생일에는 정작 한 명의 아이에게서 선물을 받았던 기억, 친구 관계로 고민하던 기억........ 

 

초등학교 3학년때는 친구가 없다며 혼자 방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즈음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또 이때 반에서 혼자 좋아했던 남자애들과, 다른 애와 얘기하던 것, 청소하면서 사귀던 남자애와의 커플링을 살펴보던 기억........ 이 있는데, 이런 걸 보면 나는 친구 관계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고, 내가 서툴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나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에만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친구'의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관계라는 건 너무 어렵고, 나는 모르는 사람과 친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가 무섭다.

 

잘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의 친구들을 돌아보면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새로 친구를 사귈 생각을 하면 피곤하다. 친구가 되지 않더라도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학원에서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선생님과는 대체 어떻게 친해지는 건지, 교수님과는 가능한 일이었던 건지.

 

나만 이상한 것 같다.

 

내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서, 세상의 규격에 맞지 않는 불량품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유행은 재미있지만 지겹고, 취향이 아닐 때도 많다. 나는 나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 걸까. 어렸을 때 배웠어야 하는 것들을 배우지 않고 살아온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이제라도 배우고 싶지만, 어렸을 때 부터 줄곧 몰랐던 그것을 지금도 잘 모르겠다.

 

주류에도 비주류의 흐름에도 끼지 못한 기분이 든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즐겁지만. 아, 친구란 게 뭔지도 모르겠다.

 

외롭지만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보고 싶지만 낯선 사람은 무섭다. 외국어를 알아듣고 싶지만 도저히 대화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나이는 성인이 되었는데, 도저히 생각은 유치원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현실이라는 건 대체 뭘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알아야 하는 걸까. 나의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나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걸까. 나의 생각을 현실에 맞춰야 되는 걸까.

 

그렇다면 누가 현실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

 

집과 인터넷 세상은 즐겁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아직 돈을 벌어본 적 없는 나. 알바라도 해봐야 할 텐데. 무서워서 못하겠다. 부모님한테 빌붙어 사는 것도 작작해야 할텐데.

 

세상에는 도망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회피만 하는 것도 지겹다. 아무것도 안 하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견디기 어렵다. 하기 싫은 너무 많고, 재밌는 일조차도 지겹다. 아. 생각이 마비되면 좋겠다. 잠자는 게 제일 재밌는 것 같다. 영원히 잠만 자고 싶다. 시간을 멈춰놓고 잠만 자고 싶다.

 

현실에 돌아올 필요 없이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시간을 멈추고 영원히 잠들고 싶다.

 

죽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죽음이 소멸일 뿐이라면 그건 너무 좋은 거 아닌가. 인간의 희망일 뿐인 거 아닌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도망칠 탈출구, 죽음이 과연 그 희망을 들어줄까. 나는 아닐 거 같다. 아닐 거 같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도망친 거 같지만, 나도 그렇게 도망치고 싶지만.

 

나는 모든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다. 모든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 당연히 삶에도 죽음에도 각각의 대가가 있을 것이다. 삶에서 치르지 못한 대가는 죽어서 치르게 될 것이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 대가를 받으리라.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도망치고 싶지만, 결국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어디로 도망치고 있는 것일까.

 

추락하고 있는데, 공중에서의 자유로움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더 오래 지속될 수록 다시 걸어올라갈 계단의 수가 늘어나고, 바닥에 닿았을 때의 충격도 클 게 분명한데도. 마치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떨어질 수 있는지.

 

왜 점점 한심해지는 걸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되게 재미 없겠다. 내 경험으로는 우울한 글은 기운 빠져서 잘 안 읽게 되던데.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까? 이 읽을 클릭해서 들어온 사람이나 있을까.

 

좋아하는 게 많았는데. 적어도 한가지는 있었는데. 지금은 좋아하던 게 많이 없어진 것 같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았고, 혼자만의 상상 속 세계를 만드는 일도 좋았다. 그림에게 이름을 붙이고 삶을 만들어주는 게 즐거웠다. 혼자만의 노래를 만드는 것도 재밌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평가질이나 하면서 소비하는 게 전부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힘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토록 좋아하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림을 그리는 게 지겹다니. 아. 이것만큼은 깨지지 않길 바랐던 동심이었는데. 이것 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한 번이나 제대로 진지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잃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릴 적 놀던 장난감을 가끔씩 꺼내 갖고 놀아보는 것처럼 잘 간직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된 걸까.

 

좋아했던 것들이 다 고장나 버렸다.

 

생각해보면 망가진 건 좋아했던 게 아니라 나 자체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진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그대로 무사히 있으면 좋겠다. 내가 도태되고 엉망이 되는 것도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것들이 무사하면 뭔가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웃기다. 어쩌면 이것도 오늘, 이 시간 잠깐의 변덕일 것이다. 잠깐 느끼는 감정에 지나치게 휩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시간 뒤에 보면, 내가 이딴 생각을 했었네? 하고 하하하 웃을지도 모른다.

 

그림, 그래 그림을 그려야지. 뭘 그려야 할 지도 모르겠고, 잘 그리지도 못하지만.

 

이루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억지로 시키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싫고. 대체 뭘 해야 내가 즐거울까.

 

기독교도 결국은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체 내가 발 붙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은 어디있는 걸까. 기독교가 현실이 맞는 걸까. 그게 현실이라고 해도 나는 그걸 잘 모르는데, 괜찮은 걸까. 결국 현실을 모른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텐데.

 

20년 넘게 나에 대해서만 탐구하는데 나라는 인간은 점점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체 어떻게 살아야 괴롭지 않을까. 사실은 괴로워야 정상인 걸까?

 

죽음이 고통의 해방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괴롭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열등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사실은 그냥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게 괴롭더라도 더 쉽고 익숙하잖아.

 

알고 있었다. 내 이상은 저 먼 곳의 별처럼 빛이 나는데 나의 오늘은 진흙창에 쳐박혀 있다는 걸. 그래서 더 별같이 빛나는 무언가를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잘못된 세상을 고치고, 온 몸을 내던지며 불사르는 나를 꿈꾸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얼음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 두려움에 굴복하고, 사회에 순응하는 게 더 익숙하다. 말 건네는 것 하나도 무서운 나인데.

 

불나방을 동경하지만, 벌레 취급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나방이 될 용기가 없다. 그들이 나를 향해 휘두를 말과 손가락이 무섭다.

 

내 몸을 불사를 때의 고통이 두렵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모든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익숙하고 고통스럽고 엉망진창 한심한 이곳에 남아있기로 한 것 같기도 하다. 용기는 어디서 짜내는 걸까. 짜낼 용기가 없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걸음이라도 시작할 방법이 있다면, 그게 뭘까.  한 걸음 쯤이라면 나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할까.

 

이상마저 완벽하지 않았음을 느끼는데

 

나는 불완전한 이상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을까. 무너져 가는 현실의 나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나는 왜 아무것도 듣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그냥 모르겠다.

 

그냥 한심하고 괴롭고 외롭다.

 

변화할 방법 말고 누가 날 변화시켜주면, 그래도 나는 여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