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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자기 발전소/믿음이란 뭘까?

[로마서 02:01~02:05]

by 안나오 ANNAO 2020. 5. 11.

본문 및 떠오른 생각

 

0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먼저 "정죄"라는 말, 잘 안 쓰는 말이니까 뜻을 확인하고 넘어가자.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네이버 국어 사전

개인적으로 정죄한다는 건 이렇게 느껴진다. A가 길에 쓰레기 버리는 걸 보고, '길에 쓰레기를 버리다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다니, 쯧쯧.'

 

그러므로 1절은 A를 보고 혀를 차면서도, 정작 나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린다는 의미이다. 내가 '아니, 쓰레기 좀 버릴 수도 있는 거지, 그럴 때도 있는거지' 하고 변명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이미 A를 보고 잘못된 행위라고 판단함으로써 그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충분히 알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죄를 변명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그 죄를 짓는 사람을 정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죄라는 걸 인식하면서도, 때로는 같은 죄인지 모르고 똑같은 죄를 짓는다. 당연히 같은 죄를 지은 나도 정죄받아야 하는 것이다.

 

0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0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개인적으로 정죄가 잘못된 행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내가 정죄하던 행동을 직접 행하게 된 후였다. 나의 생각과 기준이 철저히 무너지고 나서야 나는 사람들에게 정죄를 남발하고 있었고, 그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0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0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한창 정죄에 빠져있던 때에 나는 마치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열정으로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동했다. 예수님을 통해 율법을 폐한 하나님이셨는데 나는 반대로 율법주의자처럼 군 것이다.

 

진지하게 돼지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나 고민했고 왜 예배를 안식일에 드리지 않는가 고민했다. 또, 성경에 나오는대로 여자들은 머리에 천을 써야 하나 고민했으며, 미디어를 끊으려고 노력했다. TV를 안 보려고 거실에서 가족과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틀어져 있는 TV화면을 안 보기 위해서 애썼다.

 

그러면서 게임에 빠져있는 다른 교회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죄했고, 예배 중에 핸드폰하는 사람들을 정죄했다. 교회다니면 최소한 이거는 지켜야지, 이건 하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평가했다.

 

처음에 무엇이 무너졌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돼지고기는 시도도 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 지킬 수 없는 규칙과 율법, 나만의 기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서 많은 기준들이 무너지고 말았을 때, 그때서야 정죄했던 나를 반성했다.

 

내가 정죄하던 일들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난하고 평가할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왜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이라 말하며 율법은 '인간의 죄와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이끄는 도구'인지, 왜 율법을 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율법은 사람이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우선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온 마음을 다하여서,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 무엇보다도? 여기서부터 꽝이다.

 

적어도 나는 꽝이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거짓말이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는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고, 그만큼 율법을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기 어렵다. 당연히 정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정죄가 과연 이웃을 사랑하는 일일까?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일까?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율법으로 인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율법보다 더 큰 예수님이 있다. 그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희생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예수님을 떠올릴 때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적어도 의욕은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언제나 의심이 들지만 예수님을 떠올리고 사도 바울을 떠올리면 용기가 난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사람을 조금이라도 좋아해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로마서 2장, 3장이 그런 율법과 죄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일단 할 일이 있으니까 이건 다음에 써봐야겠다. 다음에 빨리 오길 바란다. 꾸준히 성경 좀 읽었으면......

 

 

행동 목표

  1.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이해하고 공감해보기

  2. 부모님을 기쁘게 할 방법이 뭔지 고민하고 실천해보기

 

안녕 나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