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기록: 역설
나는 서로 상반된 단어의 나열을 좋아한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냉정과 열정, 사랑과 전쟁...... 그리고 모순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좋아한다. 차가운 불꽃, 순수한 악의, 타오르는 어둠. 직접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목 중에 우아한 거짓말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단어가 가질 수 없는 특성으로 단어를 수식하면 두 가지 의미가 충돌하면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다. 강한 대비를 보이면서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깊이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된다. 다시 얘기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거짓말이라는 게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우아하다'는 수식어로 인해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역시 나는 성격이 좀 베베 꼬인 거 같다. 그런 나를 사랑하면서도 역겨워 하는 걸 보니, 나란 인간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리고 왜 그렇게 모순적인 조합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재미라는 건 그런 뻔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고,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반대되고 모순되는 조합을 사랑한다. 반전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런 것 아닌가. 그게 언제나 기분 좋게 다가오지도 않지만.
세상이라는 게 다 그런 거 같다.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반대되는 게 함께 있고 떨어트릴 수 없는 거다. 지나치게 진지한 얘기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난 지금 진지하니까. 그리고 진지하게 우습다고 생각하고 있다.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게 좋으면서도 나가고 싶고. 나가고 싶으면서도 일어나는 것조차 귀찮은 매일매일이.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혼란해진 동안 자연은 안정을 찾고, 사람들이 집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되자 공기도 하늘도 맑아져 밖으로 나오라 유혹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미세먼지가 극성일 때는 귀찮아서 안 쓰던 마스크인데,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어지니까 공기가 맑다니.
끊임없이 원을 그리는 흐름 속에 살고 있는 거 같다. 적당한 순간은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뿐이고 매일 어떤 극단으로 향하다가 정작 극단이 되면 곧바로 다른 극단으로 향하는 거 같다. 바이킹처럼.
집에만 있자니 게을러져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하고 최선을 다해 외출을 하고는 나머지 하루는 게으르게 보냈다. 잠깐 아파트 단지나 근처 동네나 한 바퀴 돌려고 힘껏 옷을 고르고, 액세서리랑 구두도 골랐다. 그러고 아파트 한 채 주위만 한 바퀴 돌려다가 근처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햇살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아침 일찍 나왔는데, 동네 서점 문 여는 시간이 그즈음 인지도 처음 알았다. 책 사러 아침부터 나올 일도, 밤늦게 허겁지겁 나올 일도 없다 보니 머릿속에서는 24시간 운영하고 있었다. 셔터가 올라가는 걸 보고 갓 구은 빵을 사는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작 필요한 교재는 인터넷 시켜놨는데 충동적으로 중국어 단어장이랑 문제집을 샀다. 4월 11일이 HSK 시험일인데 참 빨리도 산다.
그렇게 사람 별로 없는 평일 오전에 한가롭게 산책하고, 주변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도 열심히 구경하고 왔다. 맞지 않은 구두를 신은 발은 그 얼마 되지도 않은 걸음에 물집이 잡혀 버리고, 운동부족이 분명한 몸은 책 두 권에 팔이 저릴 정도였지만 굉장히 좋았다.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꽃은 사람들 구경하라고 피는 게 아니라 자기 살려고 열심히 피어나는 건데, 생각해보면 공기도 좋고 날씨도 좋은 지금이 피어나기 가장 좋은 시기인 거 같기는 하다.
이 정도 사치는 괜찮지 않을까. 집 아니면 일주일에 한 번 약국 들리는 게 전부인데 두 달만에 동네 산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정작 마스크 사야 되는 날은 나가기 싫은 게 문제지만.
창밖에 바람이 부나 보다. 유리창 너머에는 햇살을 받은 벚꽃나무가 정말 아름답게 서 있다. 창문에 드리우는 그림자마저도 아름답다. 꽃구경하기 제일 좋은 장소는 내 침상 위다. 정말 너무 예쁘다.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나오는 풍경이다. 마침 하늘도 파랗고 예뻐서 벚꽃이랑 정말 잘 어울린다.
참고로 사진. 햇볕은 가히 최고의 필터인데, 카메라가 이걸 못 담는 게 너무 아쉽다.... 정말 예쁜데 ^^
여전히 공부는 하지 않고, 그래서 빨리 오프라인 강의의 필요성을 실감하지만 정작 학교에 다니기는 싫다. 그게 나는 웃기고 재밌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다시 싫어지겠지. 하지만 역설적인 게 제일 싫고 좋다. 역설이야 말로 가장 짜릿하다. 남한테 일어났을 때도 나에게 일어났을 때도.
하지만 반전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 인생을 뒤집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다. 그리고 노력으로 성공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마땅한 일일지도 모른다. 반전이 사실은 가장 당연한 일이라는 것까지도 아, 얼마나 모순적이고 즐거운지.
+)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코로나 19 긴급구호 모금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2020년 모금 후 2021년까지 코로나 19 위기대응에 사용될 예정이라니, 관심 있는 분은 기부하시길.
https://donate.msf.or.kr/api/msf.or.kr/1/Gift/Gift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정기/일시 후원 모두 후원금액 항목은 체온계/의료진 구호복/의료진 파견/직접 입력으로 동일했다.
기부금은 체온계 1,7000원, 의료진 구호복 6,5000원, 의료진 파견 120,000원이었다.
나는 국경 없는 의사회 사람도 아닌데 보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왜 이런 걸 쓰고 있는 걸까....
아무튼 혹시 본 사람은 관심 있으면 후원해보시길. 참고로 정기후원은 모금 기간 이후에도 진행되어서 다른 긴급후원 활동에 사용될 수도 있는데, 정말 코로나 19에만 도움을 보태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후원자 센터에 전화해서 후원기간을 지정해야 한다고 하네요. 귀찮지만 혹시 모르니까 전화번호도 써드림. (02-3703-3555)
자신의 생명을 걸어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하는지 그 정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나 이 글을 볼 사람들에게 한 번 더.
https://donate.msf.or.kr/api/msf.or.kr/1/Gift/Gift
조금 귀찮더라도 천 원이라도 십시일반 합시다. 이건 너무 적은 거 같다 하시는 분들, 저 한 달에 천 원씩 기부도 해본 사람입니다. 한 번 내고 끝날 건데 천 원 내는 건 인력낭비라 효율이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
https://donate.msf.or.kr/api/msf.or.kr/1/Gift/Gi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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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밀린 수업도 안 듣고 내일까지인 과제도 안 했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보람 있는 하루인 것 같다. 이제 게임해야지.
엄마, 아빠, 미안. 그래도 용돈은 좋은 데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