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기록: 중간고사
나는 인문대이기 때문에 시험은 주로 글을 쓰는 게 많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과제로 대체된 과목도 많았는데, 그것도 글 쓰는 게 대부분이었다. 감상문이라든가, 주어진 문제에 대한 생각을 쓴다든가.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대충 써서 제출했다.
특히 무슨 영상이나 논문 보고 감상문 같은 거 써오라고 한 과목은 안 본 수업 영상 찾아 보지 않아도 제출할 수 있어서 정말로 공부 안 했다.
중국어 관련 과목만 중국어로 발표하는 걸 영상으로 찍으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나는 게으름의 끝판왕을 찍고 있었고, 그 두 과목 중 하나는 팀플이어서 팀에게 민폐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힘들게 피피티를 만들었다.
솔직히 중국어는 대학 들어와서 처음 배우기 시작해서 아직 잘 못한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있고 신청해 놓은 인강도 무의미하게 기간만 지나고 있으니....... 퇴화하지만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원래 못해서 퇴화할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서 파파고를 조금 이용했는데.... ^^
발표를 3분 정도 해야 해서 파파고로 중국어 문장 전체를 읽게 시켰을 때 나오는 시간을 기준으로 대본 짜고 PPT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하려니까 3분 안에 발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심지어 발표 대본을 읽어도 7분이 나와서 2배 이상 나왔다.
그런데 그걸 외워서, 그리고 PPT 넘기면서 하면 21분이 나왔다. 그러니까 파파고 속도의 7배가 나왔다. 결국 발표 내용을 반 보다 조금 많이 줄였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밤을 새면서 발표 연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정말 살을 도려내는 기분으로 피피티 분량의 반을 지웠다.
피피티 만드는데만 이틀 정도 걸렸는데...... 이거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도저히 시간이 안 나와서 없앨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이 외워지고 문장도 내 중국어 수준과 비슷하고 그랬는데 앞부분을 많이 없앴다. 지금은 좀 후회되는 부분인데 다른 팀원분들 발표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워서 원래 발표 주제랑 비슷한게 뒷부분이라서 뒷부분을 살렸다.
밤을 새니까 더 안 외워지고 버벅거리고 생각이 안 났다.
외우라고 했지만 그래도 몰래 읽을 걸. 티도 안나는데. 시도는 안 했지만 써놔도 읽은 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라서 외우는 걸 택했다. 전날 새벽부터 밤을 새고, 1시간 정도 잤다가 다시 연습했다. 말이 연습이지 무한 발표 영상 촬영이었다. 시간이 괜찮게 나올 때까지가 목표였다.
뒤로 갈 수록 멍해지고 문장 사이의 텀이 길어졌다. 게다가 생각도 띄엄띄엄 나서 두 글자 말하고 두 글자 말해서 굉장히 이상하고 어색한 느낌이 가득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감정이 불안정해진 것이었다. 밤을 새서 그런 거 같은데, 영상을 찍으면서 다음 문장이 늦게 떠오를 때마다 현타와 함께 왠지 울컥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후 쯤에는 약간 포기하고 유튜브 보면서 놀다가 저녁에 마지막으로 찍었다.
4분대로 나왔다. 여전히 문장도 띄엄띄엄에 발음도 개차반, 두 글자씩 말하는 것도 못 고쳤다. 그래도 가장 시간이 짧게 나와서 허접한 영상을 제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내가 뒤늦게 시작했고, 잘 모르는 부분을 남긴 건 잘못 된 선택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뭐라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중국이나 중국어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나 의지가 없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중국어를 배워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지금, 나머지 한 가지 중국어 발표가 남은 상황이다.
이 수업은 발표만 하는 게 아니라서 안 본 수업 영상을 봐야하는데 정말로 보기가 싫다. 게다가 겹친 황금 연휴에 정말 놀고 먹었다. 목요일까지인 줄 알고 어떡하지 싶어는데 일요일까지였다. 다행이었지만, 일요일까지인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베짱이 모드에 돌입했다.
안 되겠다. 조금만 더 놀고 저녁 먹고 나서 수업 들어야지.
다른 수업도 다시 진도 나가고 과제도 주는데 정말 대책이 없다.
그리고 누가 내가 중국어를 가지고 대체 뭘 할 수 있는지 알려주면 좋겠다. 이과는 뭔가 만들어낸다든가, 과학원리야 워낙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다 보니 그 과가 가진 원동력이 뭔지 직관적으로 보이는 느낌인데 나는 대체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